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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의 여성 킬러 서사, 노화와 존재의 의미, 그리고 액션 누아르의 미학

by wotns 2025. 5. 12.

 

‘파과’가 보여주는 여성 킬러의 삶과 강렬한 서사

2025년 4월 30일 개봉한 영화 ‘파과’는 한국 영화계에 드물게 등장한 60대 여성 킬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이다. 원작은 구병모 작가의 동명 장편소설로, 이미 한국 문학계에서 “가장 강렬한 여성 서사”라는 평을 받았던 작품이다. 영화는 이혜영이 연기한 전설적 킬러 ‘조각’의 삶을 중심으로, 조직 내에서 ‘대모님’이라 불리는 그녀가 세월의 흐름 속에서 점차 퇴물 취급을 받는 현실을 치밀하게 그려낸다.
조각은 40년간 ‘신성방역’이라는 청부살인 조직에서 활동하며, 냉철한 판단력과 철저한 계획으로 살아남아온 인물이다. 그러나 노화와 신체적 한계, 조직의 냉정한 시선, 그리고 젊은 신입 킬러 ‘투우’(김성철)의 도전 앞에서 그녀는 점차 흔들리기 시작한다. 영화는 조각이 킬러라는 정체성에만 머물지 않고, 한 인간으로서 겪는 고독과 상실, 그리고 마지막 선택의 순간까지 깊이 있게 따라간다.
‘파과’는 단순한 액션 누아르가 아니다. 이 작품은 여성, 노인, 킬러라는 세 가지 정체성을 교차시키며, 사회가 이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낸다. 특히 “살아 있는데도 처치 곤란의 폐기물처럼 취급받는” 노년의 현실, 여성에게 요구되는 이중적 역할, 그리고 킬러라는 극한의 직업이 주는 고독이 서사 전반에 녹아 있다.
조각의 삶은 ‘흠집 난 과일’이라는 제목의 의미처럼, 전성기를 지나 쇠락해 가는 존재이지만, 오히려 그 흠집 속에서 더 깊고 완숙한 인간적 가치를 발견한다. 영화는 조각을 통해 나이 듦과 상실, 그리고 자기 존재의 의미를 묻는다. 이혜영의 절제된 연기와 민규동 감독의 세밀한 연출이 더해져, 관객은 전례 없는 여성 킬러의 삶에 몰입하게 된다.

노화와 상실, 존재의 의미를 묻는 ‘파과’의 드라마

‘파과’의 진짜 힘은 노화와 상실, 존재의 의미라는 묵직한 드라마에 있다. 영화는 액션 장르의 쾌감에만 집중하지 않고, 한 인간이 나이 들어가며 겪는 신체적 한계, 사회적 소외, 그리고 내면의 공허함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조각은 조직 내에서 점차 효용가치가 떨어진 존재로 여겨지며, 젊은 킬러 투우의 도발과 위협에 직면한다. 이 과정에서 조각은 자신이 지켜온 철칙과 신념, 그리고 살아온 방식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한다.
영화는 노년의 삶을 “처치 곤란의 폐기물”로 보는 사회의 냉혹한 시선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조각은 자신의 몸에 남은 상처와 노화의 흔적을 받아들이며, 동시에 마지막까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고자 한다. 그녀의 고독은 조직 내에서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노인과 여성, 그리고 ‘쓸모없는 존재’로 취급받는 모든 이들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
‘파과’는 삶의 황혼기에 접어든 한 인간의 선택과 대결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 “내가 살아온 시간은 어떤 의미였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조각이 킬러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마지막 싸움을 벌이는 과정은, 단순한 복수극이나 액션 누아르를 넘어선 깊은 울림을 준다.
이혜영 배우의 연기는 감정 없는 킬러와 따뜻한 인간 사이를 오가며, 관객에게 복합적인 감정을 전달한다. 영화는 과장 없이 진솔하게 감정선을 쌓아가며, 상실과 회복, 그리고 인간적 연민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관객은 조각의 시선을 따라가며, 우리 모두가 언젠가 마주할 노화와 존재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액션 누아르의 미학과 ‘파과’가 남긴 한국영화의 새로운 도전

‘파과’는 액션, 드라마, 누아르, 미스터리 등 다양한 장르적 요소가 조화를 이루는 작품이다. 민규동 감독은 “살면서 처음 마주하는, 하지만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파과’는 기존 액션 영화의 틀을 깨고, 리얼리즘이 살아 있는 액션과 감정의 깊이가 공존하는 독특한 미학을 선보인다.
영화의 액션 장면은 실제 무술 감독 출신 팀이 연출하여, 과장된 연출이 아닌 현실적인 긴장감과 고통, 그리고 노년의 육체가 느끼는 한계를 그대로 담아낸다. 조각과 투우의 대결은 단순한 세대 대결을 넘어,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증명하려는 인간의 본능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파과’는 베를린, 브뤼셀, 베이징 등 10개국 이상 해외 영화제에 초청되며, 국내외 평론가와 관객 모두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CGV 골든에그지수, 네이버 관람객 평점 등에서도 상업 블록버스터를 능가하는 수치를 기록하며, 한국형 액션 누아르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 작품은 여성 중심의 서사와 노년의 삶, 그리고 액션 장르의 쾌감을 모두 아우르며, 한국영화가 세계 시장에서 얼마나 다양한 목소리와 미학을 선보일 수 있는지 증명했다. ‘파과’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기억될 2025년 최고의 한국영화로 남을 것이다.

서사와 노화의 존재의미와 액션까지 모든 게 완벽한 파과가 흥행이 어디까지 갈지 관심이 주목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