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로비’의 골프장 권력게임, 블랙코미디의 사회 풍자, 하정우 연출의 힘

by wotns 2025. 5. 12.

 

골프장에 펼쳐진 권력과 거래의 진흙탕, ‘로비’의 핵심 서사

2025년 개봉한 영화 ‘로비’는 한국 영화 최초로 ‘로비+골프’라는 신선한 조합을 내세워, 권력과 거래가 어떻게 비공식적인 공간에서 작동하는지를 블랙코미디 장르로 풀어낸다. 주인공 윤창욱(하정우)은 연구밖에 모르는 스타트업 대표로, 4조 원에 달하는 국책사업을 따내기 위해 인생 첫 로비 골프에 뛰어든다. 그의 라이벌 광우(박병은)는 이미 국책사업의 핵심 인물인 여성 장관(강말금)을 포섭해, 창욱에게는 점점 불리한 상황이 펼쳐진다.
창욱은 장관의 남편이자 실무를 쥐고 있는 최실장(김의성)을 통해 로비의 세계에 입문한다. 이 과정에서 전직 프로골퍼 진세빈(강해림), 기자 박기자(이동휘) 등 각양각색의 인물들이 얽히며, 골프장은 단순한 스포츠 공간이 아니라 권력자들이 거래와 협상을 벌이는 비밀스러운 전장으로 변모한다.
영화의 중심축은 같은 날,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두 팀이 각각 로비 골프 라운딩을 벌이는 장면이다. 한 팀은 ‘신입 로비 팀’(창욱, 진프로, 최실장, 박기자), 다른 한 팀은 ‘베테랑 로비 팀’(광우, 조장관, 마태수, 다미)으로, 각자의 목적을 위해 치열한 심리전과 뒷거래가 펼쳐진다. 골프장 곳곳에서 벌어지는 대화와 거래, 그리고 예상치 못한 사건들은 관객에게 긴장감과 유쾌한 웃음을 동시에 선사한다.
‘로비’는 단순한 로비의 성공이나 실패가 아닌,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간 군상의 욕망과 한계, 그리고 권력의 민낯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결말 역시 누군가의 일방적 승리가 아닌, 모두가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남기 위해 힘을 합치는 블랙코미디 특유의 쓴웃음으로 마무리된다.

블랙코미디로 풍자한 한국 사회의 권력 시스템과 로비 문화

‘로비’는 단순한 오락영화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권력 시스템을 날카롭게 풍자하는 블랙코미디다. 영화는 로비라는 소재를 통해, 거래와 정의가 분리된 사회에서 윤리의 경계가 얼마나 쉽게 흐려지는지를 보여준다. 골프장은 겉으로는 자유롭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회적 위계와 권력의 작동 방식이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공간이다.
하정우 감독은 침묵과 격식, 그리고 인물 간의 미묘한 심리전을 롱테이크와 카메라 워킹을 통해 섬세하게 연출한다. 클럽하우스 내부에서의 시선 교환, 침묵 속에 흐르는 긴장감, 그리고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담긴 의미는 관객에게 ‘보이는 것 너머’를 상상하게 만든다.
영화는 권력의 실체를 특정 인물의 악행이나 일탈로 환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두가 일정 부분 가해자이자 피해자라는 다층적 구조 속에서, 로비가 왜 구조적으로 반복되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인간 군상이 어떻게 스스로를 정당화하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여성 권력자인 조장관의 존재 역시 단순한 악역이 아니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로비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체제의 일면을 보여준다
‘로비’는 유머와 풍자를 통해 관객에게 웃음을 주면서도, 현실의 씁쓸함과 무력감을 동시에 남긴다. 권력과 거래, 윤리와 타협, 성공과 실패가 뒤섞인 이 진흙탕 싸움은, 한국 사회의 오래된 병폐와 구조적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하게 만든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관객들은 “로비는 왜 사라지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곱씹게 된다.

하정우 연출의 힘, 배우들의 앙상블, 그리고 ‘로비’가 남긴 의미

‘로비’는 하정우의 세 번째 연출작으로, 그의 특유의 감각적 연출과 대사, 그리고 배우들의 개성이 극대화된 앙상블이 돋보인다. 하정우, 박병은, 김의성, 강해림, 강말금, 이동휘, 최시원, 차주영 등 화려한 출연진이 각자의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소화하며, 영화의 몰입도를 높인다.
하정우 감독은 <롤러코스터>에서 보여준 빠른 전개와 유머러스한 대사, 그리고 상황극의 묘미를 <로비>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한다. 각 인물의 욕망과 갈등, 그리고 권력 게임의 역학이 리듬감 있게 전개되며, 관객은 마치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한 생동감을 느끼게 된다.
영화는 단순한 유머를 넘어, 현실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사회적 메시지를 남긴다. 로비라는 민감한 소재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관객이 그 실체를 체감하도록 연출의 문법을 설계했다. 결말에서는 창욱이 더러운 거래를 거부하고, 조카가 장관의 비리 녹취록을 확보해 국책사업의 판도를 뒤집는 반전이 펼쳐진다. 쿠키 영상에서는 창욱이 전담 스폰서로 활약하는 모습이 그려지며, 현실과 판타지가 교차하는 여운을 남긴다.
‘로비’는 한국식 권력 시스템의 미시적 작동 방식을 해부한 작품으로, 올해 한국영화계에서 가장 강렬한 사회풍자극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단순한 블랙코미디를 넘어, 권력과 윤리, 인간관계의 본질을 묻는 깊이 있는 텍스트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