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사장 세계의 현실과 ‘이름값’의 아이러니
영화 ‘데드맨’은 이름을 사고파는 ‘바지사장’의 세계를 전면에 내세운 범죄 추적극이다. 주인공 이만재(조진웅)는 저축은행 파산으로 한순간에 빚더미에 앉게 되고, 장기 밀매 현장에서 신장 대신 자신의 이름을 팔라는 제안을 받으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차는 폐차돼도 넘버만 살아 있다면 제값을 받는다”는 말처럼, 만재는 자신의 인생이 망가졌더라도 서류상 명의만 필요로 하는 이들이 있다는 현실을 깨닫는다. 이 계기로 그는 바지사장 업계에 뛰어들어, 이름을 빌려주는 대가로 돈을 벌며 살아간다.
바지사장 세계는 검은돈 세탁, 불법 사업, 권력형 범죄 등 각종 불법과 비리가 뒤섞인 음지의 공간이다. 만재는 탁월한 계산 능력과 신중함으로 이 세계에서 살아남지만, 결국 한 벤처기업의 진짜 사장이 1천억 원을 횡령하면서 만재에게 누명이 씌워진다. 졸지에 ‘데드맨’이 되어 자신의 사망 기사까지 접하게 되고, 중국의 사설감옥에 끌려가는 신세가 된다.
영화는 “목숨값은 500만 원, 이름값은 1천억”이라는 아이러니한 슬로건을 내세우며,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이름과 신분, 그리고 정보가 어떻게 거래되고 이용되는지를 날카롭게 비춘다. 이름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지만, 결국 그 이름 때문에 죽은 자가 되어버린 만재의 이야기는, 단순한 범죄극을 넘어 신분과 정체성, 그리고 사회적 책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데드맨’은 뉴스에서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바지사장 실태를 현실적으로 그려내며, 이름 한 번 잘못 팔았다가 인생이 송두리째 뒤바뀌는 주인공의 운명을 통해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조명한다.
이름을 되찾기 위한 추적, 세 인물의 공조와 긴장감
‘데드맨’의 중심 서사는 신분을 잃고 죽은 자가 된 만재가 자신의 이름과 인생을 되찾기 위해 펼치는 추적극이다. 만재는 중국의 사설감옥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뒤, 전설의 정치 컨설턴트 ‘심여사’(김희애)와 손을 잡게 된다. 심여사는 만재가 누명을 쓴 1천억 원이 정치권으로 흘러들어 갔을 것이라 보고, 사건의 배후를 함께 쫓자고 제안한다. 여기에 바지사장으로 살다 죽은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려는 유튜버 ‘공희주’(이수경)까지 합류하면서, 세 사람은 거대한 설계판의 진짜 배후를 찾아 나선다.
영화는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진 세 인물이 협력과 불신, 갈등과 연대를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만재는 자신의 가족과 미래를 되찾기 위해, 심여사는 정치적 복수를 위해, 희주는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서로를 이용하면서도 점차 진실을 향해 나아간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유력 정치인, 정치 깡패, ‘쩐주’ 등 다양한 인물들은 현실 정치와 범죄의 유착 구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추리극의 형식을 빌려, 1천억 원의 행방과 배후 세력의 정체를 하나씩 파헤쳐 나간다. 각종 반전과 음모, 그리고 서류와 비밀장부를 둘러싼 쫓고 쫓기는 과정이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하지만 일부 평론에서는 이야기의 전개가 복잡하고 산만하다는 지적도 있다. 캐릭터의 매력과 개연성이 다소 약하다는 평가도 존재하지만, 세 인물의 공조와 각자의 동기가 맞물리는 지점에서는 긴장감과 몰입도를 높인다.
‘데드맨’이 던지는 사회적 메시지와 한계
‘데드맨’은 이름을 거래하는 사회, 권력과 자본이 뒤얽힌 현실, 그리고 개인의 정체성과 책임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다룬다. 영화는 바지사장이라는 신선한 소재를 바탕으로, 현대 사회에서 ‘이름’이 단순한 표식이 아니라, 때로는 인생 전체를 좌우하는 위험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자신의 이름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던 만재가, 그 이름 때문에 모든 것을 잃고 다시 되찾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과정은, 신분과 책임, 그리고 사회적 시스템의 허점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영화는 또, 정치와 자본, 범죄가 결탁된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풍자적으로 드러낸다. 권력자들은 책임을 회피하고, 약자들은 이름 하나로 모든 죄를 뒤집어쓴다. 만재, 심여사, 희주 등 각 인물은 저마다의 상처와 목적을 안고 있지만, 결국 거대한 시스템 앞에서 무력해지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한다.
다만, ‘데드맨’은 신선한 소재와 흥미로운 설정에도 불구하고, 후반부로 갈수록 전개가 산만해지고, 정치적 메시지가 얕게 다뤄진다는 한계가 지적된다. 캐릭터의 매력이 기대에 못 미치고, 반전 역시 진부하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이름과 신분, 책임이라는 본질적 질문을 던진 점, 그리고 바지사장 세계의 실태를 현실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영화는 분명한 사회적 의미를 남긴다.
‘데드맨’은 이름값과 목숨값, 그리고 책임의 무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으로,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날카롭게 비추는 범죄 드라마다.